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1-12-30 10:33:10 IP ADRESS: *.244.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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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추억

아침에 눈을 떠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더군요. 김근태 선배님의 부고입니다. 순간 눈시울이 펑(!)하고 젖었습니다.

김근태 선배님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만드신 것이 아마도 1983년일 것입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이지요. 그 엄청나게 폭력적인 정치상황에서 감히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만들다니! 당시의 제게는 그 사건 하나만으로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만들자마자 물론 김근태 선배님은 계속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지요.  저 유명한 ‘이근안 고문사건’ 직후 법정에서 울부짖던 선배님이 생각납니다. 그때 나온 팜플렛이 바로 [무릎 꿂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입니다. 그 팜플렛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 중반, 저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연합’ 그리고 ‘직선개헌국민운동본부’에서 일했습니다. 덕분에 김근태 선배님을 가까이에서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제 기억 속의 김근태 선배님은 ‘온화하되 강인하고, 강인하되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온화한 성품이어서 저는 내심 “저 사람이 서울대 학생운동사의 전설, 그 김근태 맞아?”하고 의아해할 정도였습니다.

김근태 선배님에 대한 추억을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근태 선배님은 1980년대 모든 운동권의 행사에 오셨습니다. 꼭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자리에도 빠짐없이 오시곤 했습니다. 물론 개인 자격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의 자격으로서였습니다. 그런데 김선배님은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내실 때 언제나 5,000원을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수줍게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셨지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 5,000원이면 당시에도 큰 돈이 아닙니다. 어쩌면 ‘너무 적은 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했습니다. 아마도 자기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어서 내신 거겠지요. 저는 그분이 5,000원을 내시던 그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모임의 뒷풀이 자리라고 기억합니다. 술이 몇잔씩 돌자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떤 후배가 졸랐습니다. “천하의 김근태, 노래 한번 들어보자!” 김근태 선배님은 예의 그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노래를 한 가락 뽑았습니다. 그 흔한 80년대의 운동가요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도 엉뚱한 노래였습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오래된 뽕짝입니다. 혹시 이 노래를 아십니까?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저는 김근태 선배님이 그 노래를 부르실 때 또 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둡고 길었던 수배자 생활도 떠오르고, 끔찍했던 수감 생활도 떠오르고...하지만 역시 희망도 품고 있는...그런 그분의 마음이 너무도 잘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김근태 선배님의 노래 실력은 별로입니다. 중저음의 음색은 멋지지만 박자도 틀리고 음정도 틀리고...어찌 보면 ‘겨우 음치나 면한’ 그런 수준입니다. 하지만 김근태 선배님이 그날 불러주셨던 [과거를 잊지 마세요]를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겁니다. 한 위대한 민주화운동가의 전 생애가 그 노래에 오롯이 담겨 있었으니까요.

자꾸 글이 길어지려고 합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이제 그만 쓰렵니다. 선배님의 부음을 접한 오늘, 그분을 잘 모르시는 여러분께 제가 간직하고 있는 두 가지의 추억-축의금 5,000원과 [과거를 묻지 마세요]-을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2011년에 우리는 ‘존경할만한 선배님’ 한 분을 잃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그를 ‘정치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를 영원히 ‘민주화운동가’로 기억할 것입니다. 언젠가 그분을 위하여 전각으로 묘비명 하나를 새길 생각입니다.

金槿泰
민주화운동가
1947-2011

[img2]

강상균

2011.12.30 11:25
*.194.155.134
자정쯤 고비는 넘기셨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주영

2011.12.30 11:45
*.32.111.90
오래된 언젠가 여당의 여의도 연구소에서 일하던 고등 동창녀석과
술한잔하던 자리에서..당시에 우리나라 정치인중에 정말 청렴하고 나라를위해
헌신적인 분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그놈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던 한사람..
그분이 김근태님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머리숙여 빕니다..편히 잠드시길..ㅠㅠ

최동락

2011.12.30 12:00
*.128.236.121
참, 가슴이 아리네요. 인사동에 약속이 있어 나오시면, 종종, 일부러 시간을 내어 얼국 한번 보러 왔다며, 대문 앞에서 손 한번 잡아보고는 돌아서던 모습..... 언젠가는 "시간 되면 00집으로 오라." 하셔서 갔더니, 이미 기자들과 술판을 벌린 가운데서, "오랫만에 그냥 같이 술이나 한 잔 같이 하자."시던, 속 깊은..... 감성.....
참 가슴이 아려오는 소식입니다.
그냥, 명복을 빌 뿐입니다.
년말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어렵다는데...더욱 번창하시기를.....

손혜진

2011.12.30 12:46
*.209.69.96
한 평생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의 빕니다...
profile

명로진

2011.12.30 14:18
*.192.225.95
심샘의 글이
가시는 김근태 선생님을 아쉬워 하는 분들께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혜자

2011.12.30 15:55
*.63.36.76
저도 눈물이 흐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rofile

오명록

2011.12.30 16:58
*.221.188.46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화가 남니다.
이근안보다 김근태선생의 죽음에 겉으로는 애도하면서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을 신지호를 생각하니 울화통을 터질것 같습니다. 뉴타운 사기에 홀려 선생을 외면했던 야속한 지역민들..다시는 속지마세요.
선생을 영웅이라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제가 기억하는 선생은 이시대의 하나 뿐인 선비셨습니다.
그렇게 말솜씨가 뛰어나지도 않았고 인기가 많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념대로 이것이 옳은 길이라면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김근태 선생이 민주당에 입당하여 현실 정치인의 길을 걸으실때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다 합니다.
권모술수가 횡횡하는 흙탕물판에 들어가 온화하고 착하시기만 성품에 상처받지않을까..혹여 물들지나 않을까

정치인 김근태는 대중들에게 참 인기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정도만 걸었고 신분이 바뀌었다고 한눈 팔지않았습니다.
김근태는 언제나 김근태였고 언제나 큰형님이셨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성우

2011.12.30 17:14
*.214.100.32
온화함과 강직함..
항상 가신 뒤에야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1년이 거의 저물어가는 이 즈음..
그 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청인

2011.12.30 19:43
*.39.153.142
MB정부의 여러실수들..대북정책등 심란함속에 또 하나의 의인의 죽음이
이시간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군요. 애쓰셨슴니다,그동안
명복을 빔니다.다시 오시는 세상엔 그저 한가로히...사소서

지근수

2011.12.30 23:14
*.138.216.59
늘 화려한 조명보다 뒤에서 말없이 행동하는 정치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모진 고문을 받으신 분의 얼굴이 어쩌면 저리 맑을수가 있는지요...한때 서슬퍼런 악랄한 독재자는 먼지처럼 묻혀지지만 고인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타오를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은정

2011.12.31 02:04
*.140.55.174
오늘 아침 부음을 듣고 많이 안타까왔습니다.
올곧은 분 한 분이 아쉬운 지금의 세상에, 그것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힘들다 돌아가셨다니...

아마도 저 세상에서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일하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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