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6-01-09 11:39:07 IP ADRESS: *.16.202.210

댓글

0

조회 수

6433

그들보다 즐겁게 살자!

나를 움직인 이 한권의 책 - 무라카미 류 장편소설 <69>  

내가 고삐릿적 이야기니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정말 악질적인 선생들이 많았다. 이제 와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종자들.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애들 패는 재미로 사는 인간들. 완장 하나 채워주면 그것도 권력이라고 눈에 불을 켜고 게거품을 뿜어대며 터무니없이 발광하는 작자들. 상상이 안 간다고? 영화 [친구]에서 “니 아부지 뭐 하시노?”하며 무식하게 학생들을 두들켜 패던 담임선생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교련선생이었다. 언제나 빨간 해병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개병대’라고 불렀다. 개병대는 우리를 그야말로 개 패듯 팼다. 하지만 억압에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제 더는 매를 못 맞겠다 싶었을 때, 우리는 아예 이 놈의 학교 때려치울 결심을 하고, 그를 학교 밖 뒷골목으로 불러내 집단으로 짓밟아버렸다. 그날 부러진 개병대의 이빨이 세 개였는지 네 개였는지.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단지 그 저승사자 같던 개병대를 죽도록 패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앞 뒤 가릴 줄 모르고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속시원하게 짤리겠군, 하며 찾아간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교련선생은 병가를 냈다고 했다. 일주일쯤 후에 그가 돌아왔는데 그래도 역시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개병대는 우리를 보자 비굴하게 눈을 내리깔며 허둥지둥 발걸음만 재촉했을 뿐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이럴 수가! 우리가 꿈을 꿨나? 아니다. 권력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훨씬 더 영악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용서해줬느냐고? 천만에!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개병대 같은 놈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는 이들과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읽은 가장 유쾌한 소설 [69]의 후기에 이렇게 썼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패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 에식스일기(6) 굿바이 잉글랜드 file 심산 2006-04-24 2354
12 런던일기(4) 해로드와 픽사 20주년 기념전 + 1 file 심산 2006-04-24 2534
11 런던일기(3) 하이드파크와 웨스트엔드 + 1 file 심산 2006-04-24 2585
10 런던일기(2) GOTHIC NIGHTMARE + 1 file 심산 2006-04-24 2294
9 런던일기(1) 프레디 머큐리 만세! + 2 file 심산 2006-04-24 2723
8 에식스일기(5) 책 읽고 독후감 쓰기 file 심산 2006-04-24 2535
7 에식스일기(4) 어긋난 인연지우기 심산 2006-04-24 2589
6 에식스일기(2) 부엌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일몰 file 심산 2006-04-24 2369
5 에식스일기(1) 딸의 롤러월드 생일파티 file 심산 2006-04-24 2702
4 내 생애 최고의 연애소설 file 심산 2006-02-20 3239
3 하찮음에 대한 경배 관리자 2006-01-30 4419
» 그들보다 즐겁게 살자! file 관리자 2006-01-09 6433
1 그래, 늬들 말이 다 옳아! 관리자 2006-01-09 29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