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30 17:20:37 IP ADRESS: *.201.1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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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가 다는 아니다
스티븐 헤릭의 [챔피언](1993)

고든 밤베이(에밀리오 에스테베즈)는 단 한 번도 패소해 본 적이 없는 변호사다. 승리와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친구도 취미도 없이 오직 일에만 매달리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이다. 고든의 본의 아닌 일탈은 빙판길 음주운전에서 비롯된다. 3년 동안 무려 13번이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탓에 면허가 취소되고 5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잘 나가는 로펌의 수석변호사이니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상사는 오히려 그를 윽박지른다. "잘 걸렸어. 자넨 좀 쉬어야 돼. 이 기회에 페어플레이라는 것도 좀 배워보라고!"

고든에게 떨어진 사회봉사 명령은 어이없게도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소년 아이스하키 팀의 코치를 맡아 일하라는 것이다. 미네소타의 빈민가에 모습을 드러낸 고든의 최고급 리무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처럼 보인다. 결국 문제의 소년들과 마주서게 된 고든의 가슴 속에는 절망뿐이다. 기본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데다 틈만 나면 허튼 장난질에만 정신을 쏟는 이 덜떨어진 개구쟁이들을 데리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한담?

스티븐 헤릭 감독의 [챔피언](1993)은 고든과 이들 오합지졸 아이스하키 단이 벌이는 요절복통 코미디 영화다. 하지만 안에서 새던 그릇은 밖에서도 새기 마련. 교묘한 반칙을 가르치는 고든에게 아이들은 반발한다. 무심코 내뱉은 계급 차별적 발언은 아이들의 분노를 산다. 게다가 아이스링크에서 마주친 옛 동료들은 고든이 애써 잊고 살았던 뼈아픈 과거를 상기시킨다. 고든 역시 한때는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꿨던 소년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갈등과 반작용들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그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낸다. "팀이란 단순히 이기려는 집단이 아니야. 어딘가에 소속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지."

[챔피언]은 전형적인 디즈니표 가족영화다. 사업과 승부에 미쳐 동정심을 잃어버린 어른들과 사랑받지 못하여 제대로 어긋나버린 소년들이 이 영화 속에서 나름의 해피엔딩을 찾아나간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챔피언’이 되어가는 과정이 흐뭇하고도 아름답다. 삶에는 승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디즈니표 매시지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승부가 다는 아니야. 하키의 즐거움을 느껴봐. 얼음 위를 씽씽 날아다니는 거야!’"

[한겨레] 2003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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