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25 15:20:24 IP ADRESS: *.51.16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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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남부의 정서와 풍광
호튼 푸티(Horton Foote, 1916-    )

미국영화 속에는 미국이 없다. 기껏해야 뉴욕이나 LA 혹은 시카고가 등장할 뿐이다. 진정한 미국의 실체는 어쩌면 이들 특정 대도시들의 밖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좀더 보수적이고 여전히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주의가 엄존하며 거칠고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세계이다. 이러한 경향은 후덥지근한 남쪽으로 옮겨갈수록 점점 심하게 나타나는데, 호튼 푸티가 바로 이러한 미국 남부지방의 정서와 풍광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1950년대 이전의 미국 남부지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까닭에 마치 잊혀지고 빛 바랜 흑백사진들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준다. 그 흑백사진들은 대체로 끔찍하지만 가끔씩은 아름답다.

호튼 푸티는 텍사스주의 작은 시골마을 워튼에서 태어났다. 푸티에게서 남부의 시골마을이란, 마치 윌리엄 포크너의 경우가 그러하듯, 자신의 고향이자 이후의 작품들 속에서 계속 반복회귀하게 되는 가상의 공간이 된다. 그가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순전히 어린 시절 가끔씩 찾아와 시골꼬마의 혼을 쑥 빼놓곤 하던 유랑극단 때문. 대부분의 연극지망생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18살이 되자 단돈 5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뉴욕으로 줄행랑을 쳐서 브로드웨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배우 대신 극작가로 변신하여 몇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뒤 그가 안착한 곳은 TV드라마. 1950년대를 풍미했던 [플레이하우스] 시리즈나 등이 바로 그의 작품들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40대 중반에 [앵무새 죽이기](국내 개봉제목은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로 화려한 데뷔신고를 치르며 할리우드에 발을 들여놓는다. 뒤늦게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의 앨라배마. 그레고리 펙이 흑인 피의자를 보살피는 백인 변호사로 열연하여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상적인 단역연기를 펼쳐보인 로버트 듀발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이후 그는 호튼 푸티가 가장 선호하는 배우가 되어 [내일] [텐더 머시즈] [죄인들]에서 주연을 맡았고, 그 중 [텐더 머시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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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거야]는 자신의 연극 [여행하는 아가씨]의 각색. 이제는 한물간 왕년의 컨트리 가수가 어렵사리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 적응해간다는 스토리라인인데 스티브 매퀸의 연기가 큰 호평을 받았다. 훗날 푸티의 두 번째 오스카 수상작이 된 [텐더 머시즈] 역시 이와 동일한 스토리라인을 더욱 따뜻하고 깊이있게 발전시킨 것이다.

푸티의 작품들 중에는 유독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미국 남부지방의 농장과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간들을 다룬 것들이 많다. [허리 선다운]은 백인 지주와 흑인 자영농간의 토지분쟁을 다룬 작품인데 촬영 기간 내내 지방민병대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남부지방에서 로케를 감행한 최초의 메이저영화로 기록된다. [죄인들] 역시 비슷한 테마의 변주이다. [내일]은 윌리엄 포크너가 1939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고, [용들의 거처]는 1930년대의 텍사스를 배경으로 하는 자전적 작품.

존 스타인벡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오브 마이스 앤 맨](그냥 [생쥐와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출시하면 어디 덧나나?)은 비디오숍의 보석이다. 주연을 맡은 존 말코비치와 감독까지 겸한 게리 시니즈의 연기가 그야말로 최상급이어서 전율을 느낄 정도. 일흔을 넘긴 노작가의 각색솜씨도 여전히 빼어나서 원작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은 [바운티풀 여행].본래는 자신이 직접 쓴 TV드라마였는데 연극무대를 거쳐 영화화되었다. 아들 내외하고 함께 하는 아파트 생활이 지겨워서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난 할머니의 로드무비로 제랄딘 페이지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가까스로 찾아간 고향은 이미 피폐화해 있더라는 결말에서 영락없이 이만희의 유작 [삼포 가는 길](1975)을 연상시킨다. 할머니는 그러나 그 피폐화한 고향마을에서도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따름이다.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남부 출신의 휴머니스트 호튼 푸티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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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2년 로버트 멀리건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1964년 로버트 멀리건의 [비가 올 거야](Baby the Rain Must Fall)
1967년 오토 플레밍거의 [허리 선다운](Hurry Sundown)
1972년 조셉 앤서니의 [내일](Tomorrow)
1976년 글렌 조던의 [이민자](The Displaced Person)
1982년 브루스 베레스퍼드의 [텐더 머시즈](Tender Mercies)★★
1985년 피터 매스터슨의 [바운티풀 여행](The Trip to Bountiful)ⓥ★
1991년 피터 매스터슨의 [죄인들](Convicts)
1992년 마이클 린제이의 [용들의 거처](The Habitation of Dragons)
1992년 게리 시니즈의 [오브 마이스 앤 맨](Of Mice and Men)ⓥ
1993년 빈센트 워드의 [내 마음의 지도](Map of the Human Heart)ⓥ

ⓥ는 비디오출시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후보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수상작

[씨네21] 2000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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