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2-05-26 15:16:31 IP ADRESS: *.120.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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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영수(1946-2011)

콧수염과 야전점퍼 차림의 흑백영화에서 나온 듯한 사내, 성에 차지 않는 한국 사진에 거침없이 꾸지람을 던지던 김영수(1946~2011) 선생이 지난 5월 6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위암과 식도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그는 지난해 4월 한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되지는 못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원자력병원의 병실에는 김영수와 24년 1개월간 그를 스승으로 모신 사진가 정인숙 두 사람만 남았다. 두 사람은 늦은 시간까지 2인용 병실의 빈 침대에 쌓아놓은 인화지에서 한 장 한 장 사진을 골라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가쁘게 그가 말했다. "사모님(정인숙) 이젠 다 됐네요. 글만 받으면 되겠어요." 그리곤 2시간 뒤 그는 눈을 감았다.
고 김영수 선생이 마지막까지 사진원고를 골랐던 작업은 1999년부터 서울대 교수인 춤꾼 이애주씨와 함께 우리 땅의 기운을 풀고 돋우는 '우리땅 사방치기 터벌림'이었다. 몹시도 춥던 지난해 11월25일, 고인은 마지막 촬영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강화도 마니산을 올랐다. 고집스럽고 강직했던 그의 40년 사진인생은 마지막 가는 날에도 변함이 없었다.

억눌린 시대에 넘치는 감성, 사진으로 표현

고 김영수 선생은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것으로 알려진다. 무용담처럼 알려지는 게 싫어 얘기하길 꺼렸던 그의 20대는 갈증에 목말라 하며 암울한 시대에 상처받았던 시기였다.
20대 중반이던 1960년대 후반에 그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대학로에 '타박네'라는 카페를 차렸다. 당시 단골은 서울대 대학생이던 김지하, 김민기, 이애주 등이었다. 장사보다는 이들과 더불어 문학과 음악, 세상을 얘기하길 좋아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때라 얼마 못가 카페는 문리대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영화와 연극 출연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의 교류는 이때 인연에서 시작된 셈이다. 또한 60년대부터 카페를 하면서 당시의 연예인에 속했던 미군부대 가수들과도 교류하게 된다. 문리대 학생과 민군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는 젊은 그에게 풍부하고 자유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민청학련 사건이 준비되면서 그의 카페는 불온학생들의 근거지로 지목되었다. 다행히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몸을 피할 수 있었고, 무작정 대전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낮에는 인테리어 일을 하며 밤이면 술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지역 사진가가 사진을 해볼 것을 권유했고, 밑지는 셈치고 구입한 첫 카메라가 롤라이코였다.
그뒤로 외국 사진잡지를 보면서 독학으로 사진을 익혔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는 고 임응식, 주명덕 등 사진가들과 교류하고, 김중만의 암실을 공짜로 쓰면서 3년간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암실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연히 시작한 사진은 그의 억눌린 욕구와 감수성과 만나 무서울 정도로 자신과 세상을 드러냈다.

12회 개인전과 12권 사진집, 일관된 작업태도 강조

1981년 김영수의 첫 개인전 <현존>은 망가지고 버려진 사물을 통해 세월의 흔적과 결 그리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생활 등 내면을 드러낸 사진으로 당시 사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뒤로 거의 매년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사진에 몰입하면서 보여준 작업들은 작가 내면과 사회성이 분리되지 않은 그러면서 형식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진들이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기록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위치에서 작가주의가 강한 사진세계를 구축해왔고, 이는 이후에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현존>이후에 <변두리 풍경>, <사람-등신대>, <사람-주민등록증>, <사람-고문>, <사람-문> 그리고 200년대의 <떠도는 섬>과 <광대> 등까지 이어졌다. 형식에서의 앞선 시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미 80년대에 콜라주 작업을 선보였고, <사람-등신대>는 실제 사람 키와 같은 크기로 인화한 최초의 대형 사진전이었다.
형식에선 열려있고 내용에선 엄격했던 선생은 무엇보다 사진가의 일관된 작업태도를 중요하게 여겼고, 지조 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것을 가장 엄하게 나무랐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81년의 '현존'작업을 30년간 축적해 '현존 30년'으로 정리하려던 것 외에도 '정물', '가면시리즈', '도시 달동네', '나의살던고향은' 등의 몸의 이상징후를 느끼기 전까지 하나씩 정리하려던 작업들이다.

민중미술과 민사협, 실천하는 사진가

고 김영수 선생은 사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987년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로 민족예술가총연합(민예총)이 결성되자 민예총 내에 사진분과를 만들었고, 민예총이 사단법인이 된 뒤에는 백방으로 뛰어 1999년 1월에 2백여명의 사진가와 함께 현재의 사단법인 민족사진가협회(민사협)를 출범시켰다. 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 활동에 참여하면서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 뒤처지는 사진의 위상과 수준을 높이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민사협의 초대 사무총장과 3기 회장을 지내며 '한국사진의 재발견' 시리즈로 원로 사진가를 알리는 전시와 출간을 했고, 민사협 그룹전시를 통해서는 시대정신과 사진의 역할을 연결시켰다. 특히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사진 60년전>을 제안, 기획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명 이상의 사진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를 성사시켰다. 대중적인 사업으로는 90년대 후반부터 노인들의 영전사진을 찍는 봉사활동을 민사협 차원에서 벌이기도 했다.
민사협 활동에 애정과 열성을 보였던 선생은 마지막에 실망과 안타까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 정권 들어 정부 기금지원이 끊어지면서 최근 몇 년간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크게 낙담했다는 것이다. 또 몇몇 원로 사진가를 예술원 회원에 등재시키려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못본 시도로 남았다. 선생은 문화예술 분야 중 유일하게 사진 출신 예술원 회원만 없다며 몇 년 전부터 기존 예술회원들의 높은 벽과 직접 부딪혀왔다. 단순히 개인의 명예문제가 아닌 장기적으로 젊은 사진가들이 계속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급속히 병세가 악화되면서 갑작스럽게 떠났지만 선생은 한국 사진은 물론 문화예술계에 일관되고 방대한 사진작업과 고집스러운 활동으로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오는 6월 23일에는 선생의 49제가 묘소가 있는 경기도 양수리에서 열린다. 묘소는 양수리 작업실로 가는 길가에 만들어졌다. 이날은 선생은 기억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문화제 형식으로 다시 한번 사진가 김영수를 기리는 날이 될 예정이다.

[월간사진]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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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2.05.26 22:06
*.124.234.84
이 양반 참...개성 있는 어른이었는데...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단역 출연도 아주 근사했고...

최후의 유작 [우리땅 터벌림]을 구입하실 분은
02-736-7100으로 전화주시길!

김명수

2012.05.28 14:32
*.253.60.49
네... 와이키키에 김영수선생님은 연기가 아니라 평소 그냥 선생님이셨어요
사진배우면서 구박도 많이 받았었는데... ㅠㅠ
"우리땅 터벌림" 가격은요??

김주영

2012.06.15 17:44
*.32.111.170
사진의 이애주교수가 미켈란제로의 대리석 조작품같이
보여진다...춤을추다 그대로 화석이 되서 천년이 지나버린
느낌이랄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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